본문 바로가기
국내 커뮤니티 인기·화제글 모아보기
[로그인/가입]

황제와 왕이 자신을 칭하는 말. 짐, 과인 이야기.

SUMMARY
시작점 | 개드립 단독 화제 · 원문 조회 53 · 댓글 5
키워드 |     
언급도 | 더쿠(1)

65c4a6f4d2048e6b37eaadcac459e18f.webp

 

 

사극에 보면 황제와 왕들이 스스로를 칭할 때 

우리들 처럼 내가 나는 이런식으로 칭하는게 아니라 

짐, 과인 어쩌고 하며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황제와 왕이 자신을 칭하는

짐(朕), 과인(寡人), 고(孤). 불곡(不穀) 

이런 용어들이죠

 

대체 이게 뭔 말일까요​

우선 봐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

그럼으로 존귀함은 비천함을 뿌리로 하고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그리하여 통치자는 스스로를

고, 과, 불곡으로 낮춰 부르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 39장-

-----

 

기본적으로 동아시아는 한나라가 유교를 국교로 수용한 이례

모든 예법이 전부 주나라 예법을 최고의 이상향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후 왕조나 동아시아 국가의 궁중예법은 모두가 

유교의 경전에서 격식과 예법이 전부 나오게 됩니다.

 

이는 마치 서양이 로마시대의 문화를 이상향으로 여겼기에 

당시에 만들어진 로마, 기독교 문화가 지금까지 지속되는 것 처럼

동양의 경우 한나라의 영향으로 유교를 기반 문화로 삼는거죠

천자와 제후의 칭호에 대해서 규정한 것은

이런 주나라의 유교예법을 자세히 다룬 책인

예기 곡례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 위에 인용한 노자에서 언급되는

제왕이 자신을 칭하는 호칭이라는 

과, 불곡 이란 단어도

모두 예기에 규정 된 것을 지칭하는 것이죠

 

왜? 그런 단어를 통해 왕이 자신을 칭하는가? 를 두고

겸양의 예법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예기에 따르면 주나라 천자는 자신을 지칭할 때

나 여소자(나, 여余) (소자小子)라 칭하라. 하며

제후의 경우 고, 불곡이라 칭하라 나옵니다

위의 내용이 이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천자가 자신을 여소자라 칭하는거나

제후가 고 , 과, 불곡 이라 칭하는 것은

무슨 자신이 특별하고 높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실은 모두 왕이 자신을 낮춰 부르는 용어입니다

고인 孤人 : 부모를 잃은 사람, 왕의 경우 덕을 잃은 사람 

과인 寡人 : 평민의 경우 남편을 잃은자, 왕의 경우 덕을 잃은 사람

불곡 不穀 : 곡식을 제대로 기르지 못하는 사람

 

이중에 과인은 맹자 양혜왕편에서 과덕지인(寡德之人)에서 나온 말로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양혜왕왈 과인지어국야, 진심언이의)

양혜왕이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나라에 마음을 다할 뿐입니다."

 

라고 양혜왕이 맹자와 대화하며

자신을 덕이 부족한 과인이라 칭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이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존재이기에 자신을 낮춤으로써 그것이 비로소 예의가 되는 것" 의 용례입니다

때문에 예기에 따르면 왕 즉 천자와 같은 존귀한 자는 

평소 자신을 자칭할 때에는 부모 앞에서는 '이름'을 불러 칭하거나

'소자'라 하며 친한 타인에게는 ''라 불러도 되지만

 

공경대부를 대할 때에는 예의를 갖춰야 함으로

함부로 자신을 높여 ''라 칭하지 말라고 기록합니다.

이미 그 자체로 존귀한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를 지칭하였을 때

처음에는 진시황도 스스로를 과인이라 칭했습니다. 

 

-----

"지난날 한나라 왕은 땅과 옥새를 바치면서 울타리와 같은 신하가 되길 청했다.

얼마 뒤 약속을 어기고 조나라, 위나라와 합종하여 진나라를 배반하였기에 과인(寡人)이 군대를 보내 토벌하는 것이다."

-사기 진시황본기

-----

 

이후 예법을 새로 정비하면서 기존의 왕과 다른 황제의 격을 맞추고자 

황제와 천자는 따로 "짐(朕)" 이라고 칭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로 사용하게 된  (朕)이란 글자도

사실 원래는 높임을 위한 글자가 아니었습니다

 

437804a2b966d39557e6af9c84429bd6.webp

 

 

(朕)이란 글자는 갑골문에도 나오는 상형자로

배 옆에서 작대기를 든 손의 형상입니다.

 

이를 두고 배를 운전하는 형태로 보아

배가 부력으로 뜬다,강을 오른다 뜻으로

짐에서 파생된 오를 등騰 이길 승勝 솟아난다의 어원으로 보기도 하고

배를 수리하는 작대기로 보아

배의 틈새를 확인하는 형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춘추시대 짐(朕)이란 글자는 틈새를 의미하는 글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지금도 사용하는 조짐(兆朕) 이란 단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거북 등껍질의 갈라진 작은 틈새를 짐이라 하고 그것이 변화하니 조짐입니다 

즉 거북 등껍질의 틈새를 보고 점을 친다에서 유래한 변화의 징조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거기에 사용된 글자가 "짐" 이란 글자입니다. 

조짐이란 단어는 이런 작은 변화를 나타내는 뜻으로 지금도 사용됩니다. 

 

가장 오랜 기록인 주례 고공기에 보면

짐(朕)을 가죽을 손질하며 틈새를 본다의 글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의미가 조그만하게 갈라진 틈으로 잘 안보이는 존재라는 뜻으로 

나를 가르키는 1인칭으로 짐(朕)이란 단어로 사용되었으니 

겸양의 의미를 가진 '나'라는 뜻의 한자가 됩니다.

 

진시황이 짐을 황제가 자칭하는 뜻으로 사용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진 이세가 짐(朕)의 뜻을 조고에게 물었을 때 

"천자를 칭하는 짐(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황제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져선 안된다" 라고

대답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덕이 없어 부족하고, 외롭고 고달프다, 백성을 잘 먹이지 못 한다.

심지어 자신을 눈에 안보인다 할 만큼 낮춰 부르기에

지고 지순하며 높고 존귀한 존재가 자신을 지칭하는 글자가 됩니다 

고귀한 존재가 자신을 그리 부르기에 더 없이 존엄한 예법이 되는 것이죠

 

이게 동양식의 예법이고 격식의 기초입니다.

 

 

20260610_121229.jpg

20260610_120856.jpg

 

고려시대에는 내왕외제로 황제라 칭했기에 

스스로 짐이라 부르며 황제의 예법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한 이후 제후국 예법으로 고쳐서

 孤 로 바꿨고 고려 말에 왕이 자신을 칭하게 되었습니다 

 

​고려를 멸하고 건국한 조선의 경우

개국 초창기에는 워낙 자신감이 넘쳤기에 천자의 예법인 

주나라 예기에 나온 여소자 (余小子)를 줄여서

 (余)라는 단어를 왕을 칭하는 말로 쓰자 건의했으나

 

우리가 무슨 진시황이냐? 라며 까였고  

유교 예법에서 제후가 쓰라고 권고한 글자이며

동시에 맹자 양혜왕 편에도 인용된 아름다운 겸양의 말

과인 (寡人)을 왕이 자신을 칭하는 말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은 스스로를 "과인" 이라고 칭했습니다 

청나라 강희제의 경우 그냥 예법 다 조까 이러며

자신을 아(我)라 칭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