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신대기근
소빙하기 기후 이상으로 17세기에 발생한 전례없는 지옥도

삶의 터전을 잃고 진휼을 바란 유랑민들이 대거 상경

이때 서울이 커지고 서울 상업 발전 시작

특산물 징세가 경신대기근으로 어려워져 대동법 전면 시행되고 이에 따라 수도 인근 상업 발달 가속(대동미로 특산물을 바꿔야 했으니까)

국고 부족으로 공명첩 발행. 벼슬 산 사람들도 상경
후손까지 양반을 유지하려면 과거를 봐야했는데, 과거는 서울 인근에서 자주 열렸으므로(경사를 기념하는 별시는 대부분 한양 인근 거주자만 그 소식을 듣고 응시할 수 있었음) 수도권에 주저앉는 과거 응시생들도 증가
이러다가 한반도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전용 쌀셔틀로 전락해서 농업을 강제당하고, 이에 따라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타남
그러다 광복 후 구로공단을 시작으로 서울 산업화가 폭발하면서 다시 이촌향도 급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