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저녁은 그냥 부모님이랑 같이 밥을 먹고 싶어서 집에 왔어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야
평소처럼 밥을 먹고 있었는데 문득 부모님 얼굴이 눈에 들어왔어
그리고 그제야 보였어
언제 이렇게 흰머리가 많아졌지
분명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휴대폰을 보실 때도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안경을 찾고 계시더라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는데 이상했어
부모님은 늘 그대로 있을 것 같았거든...
내가 어릴 때부터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
그런데 내가 내 인생만 보고 사는 동안 부모님에게도 똑같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던 거야
결혼 전에는 대학 가겠다고 공부했고
대학생활 한다고 바빴고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정신없었고
친구들 만나고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 운동하고 놀러 다니느라
정작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아
왜냐면 부모님은 늘 집에 있었으니까...
내가 돌아오면 당연히 계실 것 같았고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굳이 오래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아
예전에는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서 늘 뉴스를 보셨어
나라 경제가 어떻다
무슨 사건이 났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냐며
혀를 끌끌 차시곤 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느샌가
결혼이나 육아 이야기가 나오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보고 계시더라
나도 옆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같이 보고 있었어
그러다 화면 속 부모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부모님이 혼잣말처럼 그러셨어
“아이고... 애를 저렇게 키우면 안 되는데”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마음이 이상했어
우리 집은 아들만 둘 이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정말 많이 데리고 다니셨어
주말이면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시고
새로운 것도 경험하게 해주시고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시려고 했어
그땐 그런 게 당연한 줄 알았어
부모니까 당연히 해주는 건 줄 알았지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우리 가족은 점점 표현이 줄어들었어
아들이라 그런 건지
쑥스러워서 그런 건지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안아주는 일도 거의 없어졌어
부모님도 표현이 많은 분들은 아니었고
나 역시 먼저 표현할 줄 몰랐어
결혼 전에는 주말마다 부모님이 집에만 계시는 게 답답해서
“같이 어디 좀 가자∼”
하고 몇 번씩 졸라야 겨우 나오시곤 했어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내 아내가
“어머니 아버지 같이 가요∼”
하고 한마디만 하면
웃으면서 바로 움직이시는 거야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얄미웠어
‘내가 그렇게 말할 때는 안 움직이더니...’
‘왜 며느리가 말하면 그렇게 잘 웃어’
괜히 서운하기도 했어
그런데 오늘 그런 생각이 들더라
혹시 내가 그동안 너무 표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부모님은 계속 나를 예뻐해 주셨고
내가 몇 살이 되든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물어봐 주셨는데
나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
사랑받는 데는 익숙했는데
사랑을 돌려드리는 데는 참 서툴렀던 거지
그러다 부모님이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서
혼잣말로 이런 말씀을 하셨어
“그때 그렇게 심하게 말하지 말걸”
“그때 좀 더 잘해줄걸”
그 말을 듣는데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어
나는 부모님께 서운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었거든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왜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왜 한 번만 더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그런 기억들이 나한테만 남아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던 거야
부모님도 똑같은 순간을 기억하고 계셨던 거야
나는 그때 상처받았던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그때 더 잘하지 못했던 부모로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부모님도 처음부터 부모님이었던 건 아니잖아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고
아빠도 처음부터 아빠가 아니었어
두 분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스무 살이 있었고
나처럼 미래가 막막했던 날도 있었을 거야
돈이 없어 걱정했던 날도 있었을 거고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고민했던 밤도 있었겠지
사랑 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있었을 거고
자기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말도 있었을 거야
조금 더 안아줬으면 했을 수도 있고
한 번만 더 잘했다고 칭찬해줬으면 했을 수도 있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날도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 마음을 다 품은 채로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된 거잖아
누가 부모 되는 법을 제대로 알려준 것도 아니고
정답이 적힌 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작은 아이 둘을 앞에 두고
먹이고
입히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학교 보내고
혼내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부모가 되어갔던 거야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어
내가 부모님 세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육아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아이 마음을 이해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과연 아이 둘을 잘 키울 수 있었을까
부모님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쉽게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겠더라...
물론 부모님이 완벽했다는 건 아니야
나에게도 서운했던 기억이 있고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해줬으면 좋았겠다 싶은 순간도 있어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아
부모님이 대단한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니었어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처음 살아보는 인생에서
처음 부모가 되어
그래도 우리 형제만큼은 어떻게든 잘 키워보려고
자기 방식대로 애썼다는 것
그게 대단했던 거야∼
요즘 뉴스를 보면 정말 믿기 힘든 부모 이야기도 많잖아
자기 아이를 함부로 대하고
버리고
상처 주는 이야기들
그런 걸 볼 때면 생각하게 돼
나는 적어도 그런 집에서 자라지는 않았구나
배고프지 않게 밥을 먹었고
아프면 누군가 걱정해줬고
집에 늦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잘못된 길로 갈까 봐 혼내는 사람도 있었고
이 나이 지금까지도
밥은 먹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구나...
그게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왜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는 걸까
그래서 부모님 집에서 나오기 전에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을 안아드렸어
평소에 그런 걸 거의 하지 않으니까
두 분 다 순간 굳으시더라
그러고는
‘오잉?’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어
그 표정이 왜 그렇게 귀여운지∼
웃음이 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아팠어
나는 언제부터 부모님을 이렇게 안아드리는 게 어색해졌을까
어렸을 때는 무서우면 품에 안겼고
졸리면 기대고
아프면 손을 잡았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다 큰 척하면서
부모님의 품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어
예전에는 부모님이 그냥 ‘부모님’으로만 보였어
늘 강해야 하고
늘 나를 지켜줘야 하고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
그런데 요즘은 가끔
부모님도 그냥 한 사람처럼 보여
흰머리가 늘어가는 사람
작은 글씨가 안 보여 안경을 찾는 사람
자식들을 키웠던 시간을 뒤늦게 돌아보며
그때 더 잘할 걸 후회하는 사람
그리고 어쩌면
자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으면서도
먼저 말하기는 쑥스러운 사람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이상해
부모님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거야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었고
처음 해보는 부모였던 거야
그저 나보다 조금 먼저 태어났을 뿐이었어
그래서 요즘은 조금 두려워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을 줄 알았던 부모님에게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게 이제야 보이기 시작해서
나는 아직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같이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데
같이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괜히 쑥스럽다는 이유로
그걸 또 미루고 있을까 봐
언젠가는
한 번만 더 안아드릴걸
한 번만 더 같이 밥 먹을걸
고맙다고 한 번 더 말할걸
그런 후회를 하게 될까 봐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해보려고 해∼
별일 없어도 집에 가서 같이 밥 먹고
부모님이 보는 TV 옆에 앉아보고
같이 차도 한잔 마시고
어디 가고 싶은 데 없는지 물어보고
집에 돌아갈 때는
오늘처럼 한 번씩 안아드리려고∼ㅎ
아마 처음 몇 번은 또
‘오잉?’
하는 표정을 지으시겠지
그래도 계속 안아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부모님도 아무렇지 않게 나를 안아주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는 말해드리고 싶어
그동안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나도 다 알고 있었다고
두 분이 나를 얼마나 많이 걱정하고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아주 늦게 알아버린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
아직은 부모님 머리에 난 흰머리를 보면서
같이 웃을 수 있고
안경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놀릴 수도 있고
헤어질 때 두 분을 안아드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많이 해야겠다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한번 안아드리는 것도
부모님도 처음부터 부모님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이제야
조금씩 부모님의 나이를 이해해가는 자식이 되어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