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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SUMMARY
시작점 | 세리에매니아 단독 화제 · 원문 조회 33
키워드 |     
언급도 | 뽐뿌(2), 세리에매니아(2), 더쿠(1), SLR클럽(1)

간만에 영화글 다들 호프 볼때 뒤늦게! 마티 슈프림 보고 왔는데 영화가 너무 과하네요. 인물들을 늘 소리지르고 말싸움과 몰아붙이기, 음악은 쉬지않고 카메라도 계속 움직이고 그릇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치는 과잉 상태 그 자체. 슬로우 시네마 예찬론자들은 너무 피로하다고 하려나 ㅋㅋ

 

아무튼 스포 싫으시면 뒤로가기 ㄱㄱ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공과 섹스!)

첨엔 많은 음악 사용과 하나의 공을 주고 받는 스포츠라는 소재 때문에 챌린저스 생각도 잠깐 나긴 했는데 그 외피만 닮았을 뿐 넘나 다른 영화인것이고 ㅋㅋ 오히려 복싱 경기와 많이 닮았다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묵직한 한방을 통해 KO를 얻어내는 복서는 아니고 끝없이 잽만 날려대는 복서랄까. 사건들은 마티에게 몰아치고 그때마다 마티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갑니다.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머리를 굴리고 기교를 잔뜩 섞은 잽을 날려대지만 죄다 허공에 날려대는 헛손질. 그러나 설령 헛손질일지라도 계속해서 주먹을 내밀어야 합니다. 도대체 왜? 마티는 절대 멈추면 안되니까. 그러니까 왜? 그는 불안하니까.

 

정체성과 피해자 서사의 해체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미국 영화에서 1950년대 뉴욕, 유대인 남성을 내세우면 자연스레 몇 가지 익숙한 틀을 기대하게 됩니다. 차별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는 이민자 서사, 공동체를 중시하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고난 끝에 인정받는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 그런데 마티는 그 틀을 거부하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강하게 의식합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돌 조각을 어머니에게 선물하며 '우리 조상이 만든 것'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지는 않죠. 그런데 그 정체성을 경건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 정체성 자체를 과장된 신화로 소비하는 태도처럼 느껴지면서 자신에게 필요하면 자랑하고 필요하면 농담으로 만들고 필요하면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재료로 활용한다고 할까요.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영화 속 마티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이용합니다. 거짓말하고, 사기를 치고, 기혼 여성들과 관계를 맺기까지 하죠. 심지어 기자들과 인터뷰에서는 '나는 히틀러의 패배가 낳은 영광' 같은 도발적인 농담까지 던집니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죠. 경건한 비애나 교훈같은것은 저리 꺼져라. 자부심, 저속함, 야망, 모순이 동시에 녹아있는것이 유대계 '미국인'의 정체성.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흥미로운 것은 영화는 그런 마티를 특별히 비난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 세계 전체가 이미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렇죠. 마티의 어머니는 아픈 척하며 아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돈을 주고 자신의 개를 찾으려는 에즈라는 돈 사이에 누드 사진을 숨겨 상대를 속이려 합니다. 케이와 레이첼 역시 각각 자신들의 배우자를 속이며 살아가죠. 이 영화에는 사랑할 수 있는 인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거짓말하고, 모두가 상대를 기만하며, 모두가 욕망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질문. 이런 환경에서는 마티가 왜 이렇게 추잡하고 타락했는지 묻는게 온당한가? 오히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정직하게 살아남는게 가능한가라고 물어야 하지 않는가? 대체 이들의 삶은 왜 이렇게 힘든가? 이렇게 힘들게 만든 존재는 무엇인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마티의 삶을 가장 힘겹게 만드는 존재는 최대 라이벌로 보이는 엔도가 아닙니다. 바로 록웰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본입니다. 전쟁은 끝났고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 시대입니다. 유럽인도, 유대인도, 아시아인도 성공을 꿈꾸며 모두 미국으로 몰려듭니다. 그리고 자본은 그들의 욕망을 철저히 이용하죠. 아메리칸 드림이란건 누구에게나 기회를 약속하는 언어입니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재능이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다'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그 약속이 끊임없이 연기됩니다. 기회는 오지만 완전히 손에 들어오지는 않고, 성공은 눈앞에 보이지만 소유할 수는 없고, 그래서 마티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더 절박해집니다. 아메리칸 드림 그 눈부신 약속이 사람을 어둠으로 끌어들입니다. 너무 밝게 빛나는 것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게 됩니다.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마티가 기회를 얻기 위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라켓으로 얻어맞는 순간입니다. 그는 수모를 감수하고서라도 자본의 문 앞에 서고자 합니다. 아메리칸 드림? 자유와 기회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영화 안에서는 결국 누가 자본을 쥐고 있고 누가 자기 몸과 재능을 담보로 그 문 앞에서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지의 문제로 번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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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면 자연스레 브래디 코베의 '브루탈리스트'가 떠오릅니다. '브루탈리스트'에서 라즐로 토스와 사업가 밴 뷰런의 관계는 후원과 착취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관계였죠. 표면적으로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재능을 지배하고 소유하려 합니다. '마티 슈프림'의 록웰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둘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고 거래도 대등하지 않습니다. 록웰은 마티의 실력을 사는 게 아니라 마티의 굴욕을 소비합니다. 돈을 얻기 위해 존엄을 내어주는 순간, 마티는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광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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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광대가 아니야! 하지만 돈주면 다 함)

하지만 더욱 비극적인 건 마티는 그런 록웰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록웰처럼 되고 싶어합니다. 그는 자본의 피해자이지만 언젠가 그 체계의 승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기에. 자본은 마티를 착취하지만 마티 역시 자본을 원하고 욕망합니다.

 

또 하나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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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 수많은 실패를 겪고 난 마티는 록웰에게 납작 엎드려 일본행 기회를 얻어내고 비행기에 오릅니다. 록웰의 회사가 주최한 홍보 이벤트에서 그는 과거 자신을 꺾고 세계대회 우승자가 된 엔도와 재회하게 되죠. 정식 시합이 아니라 이벤트전의 계약상 마티는 엔도에게 져주고 돈을 받기로 합니다. 그렇게 마티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패배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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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심경의 변화라도 일어난건지 그는 엔도에게 제안합니다. 이따위 가짜 시합 말고 진짜 시합을 다시 하자고. 이건 영화 내내 마티가 보여줬던 욕망과 계산의 행동에서 벗어나는 선택처럼 보입니다. 돈도, 명예도 아닌 순수한 승부를 향한 열망. 그리고 접전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 실패만 거듭했던 마티가 마침내 얻어낸 작은 구원. 마티는 무대 바닥에 누워 눈물을 터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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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깃다! 이기쓰!)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마티는 록웰의 명령을 거역하며 자본의 노예가 될것을 거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기가 열리는 곳은 도쿄입니다. 관중들은 온힘을 다해 응소리치고 박수를 치며 엔도를 응원합니다. 엔도의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전후 일본의 재건과 부활을 상징하죠. 패전국 일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그러나 그들의 희망을 짓밟아버리는 마티. 미국인의 승리. 미국의 승리. 마티 개인은 록웰에게 자본에게 저항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 자본이 만든 무대 위에서 미국 자본의 브랜드 아래에서 일본을 다시 한번 패배시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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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무라 야스조의 '거인과 완구'를 단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작중의 대사 "미국이 곧 일본이다" 전후 일본은 미국을 적으로 삼는 대신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성장했습니다. 일본의 재건조차 미국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죠.

씨네필주의) 끝없는 잽과 랠리,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마티의 승리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미국 질서의 승리로 읽힙니다. 그는 반항했지만 체제를 뒤집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체제는 그의 반항까지 흡수해 자신을 더욱 공고히 만듭니다. 이 아이러니는 마티의 귀환에서도 드러납니다. 표면적으로야 록웰의 명령을 거역했기에 그의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시합을 구경하러 온 미군 비행기를 얻어 타고 다시 미국으로 귀환하는 모습이지만 그야말로 제국의 승리를 완수하고 귀환중인 미군 비행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그려집니다.

 

가족으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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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도착한 미군의 비행장에는 그들의 가족들이 와서 기다리며 가장을 맞이합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마티도 빠져나오는데 곧이어 레이첼이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이어지며 마티에게도 가족이 생김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레이첼이었지만 그동안 끝까지 그것을 부정하며 자신은 아빠가 아니라던 마티가 간호사에게 자신이 아빠임을 순순히 인정하며 레이첼의 병실을 물어본 것. 그리고 레이첼의 손을 잡고 이제 아무데도 가지 않을 거라며 그녀와 아이의 곁을 지킬거라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죠.

솔직히 이 장면은 조금 황당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시간 반 동안 추잡하고 허세를 부리며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외도하고, 욕망만 좇아 달려온 인물이 갑자기 좋은 남편과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선언하는게 부자연스러워서. 그런데 이런 다소 뻔한 가족주의로의 회귀도 마티의 전략이라 생각하니 좀 이해는 가더군요. 미국 사회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성공 모델.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안정된 가정, 교외의 집. 전후 미국이 가장 강력하게 팔아온 이상적인 삶의 형태. 그러니까 마티는 야망을 포기한 게 아니라 목표를 바꾼건 아닐까? 챔피언이 되는 꿈에서 이상적인 가족의 가장이 되는 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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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마지막 가족으로의 귀환이 해피엔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항복 선언은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마티는 자본을 이기지 못했고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꿈꾸던 성공을 얻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은 가족이라는 질서.

하지만 그 조차도 마티에게 성공으로 다가올지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가 행복해질지 가족 곁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며 부자가 될지 좋은 아버지가 될지 알 수 없고 영화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죠. 이 영화에는 카타르시스가 결정적 한방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은 구원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던 또 하나의 잽 처럼 보입니다. 또 한 번 주먹을 내지르고 여전히 다음 라운드를 살아가기 위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