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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장수에 대해서 알아보자

수집 시각은 실제 게시 시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래 기록은 최초 게시자나 전달 경로를 입증하지 않습니다.

SUMMARY
관측 출처 | 개드립 단독 화제 · 원문 조회 249 · 댓글 27
키워드 |   
언급도 | 루리웹(4), 웃긴대학(2), 개드립(2), 더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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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좆노잼 개씹역사똥글이나 싸러 왔습니다

 

조선시대 홍어 장수, 문순득을 살펴보면서

 

당시 조선의 홍어 유통망을 잠깐이나마 살펴볼 예정입니다 

 

 

 

 

 

 

 

 

휘비고 디비고 레츠고~~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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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gdrip.net/713031556

 

 

 

조선후기 홍어장수 문순득은 유구(류큐)-여송(필리핀 루손)을 포류한 사람인데요

 

그는 표류기간 동안 류큐어와 루손어(일로카노어)를 익혔고, 이후 조선으로 귀국 하여

 

루손에서 표류해온 이들의 통역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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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 일생을 정약전이 흥미롭게 여겨

 

직접 인터뷰를 하고 표해시말이란 책을 남기기도 했고

 

실제로 둘의 사이도 꽤 절친했다 합니다

 

 

일단 문순득의 일생은 대충 이정도 살펴보았으면 된거같고,

 

이제 문순득의 기록을 통해 대략적인 조선 후기 홍어의 유통망을 잠깐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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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장수라고 하면 시장에서 홍어 몇 마리를 소매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문순득의 실제 직업은 자료에서 어상(魚商), 즉 어물상인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1801년 12월 문순득은 작은아버지와 마을 사람 등 모두 6명이 배를 타고 흑산도 남쪽 태사도로 가서 홍어를 사들였는데요

 

한두 마리를 들고 다니는 행상이 아니라, 어장으로 직접 가서 물량을 확보한 뒤 소비지로 운송하는 상인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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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사는 대략 이런 구조였습니다.

 

흑산도,삼태도 어장 → 홍어 매입 → 나주 등 내륙 포구에서 판매

 

나주 → 쌀과 생활필수품 매입 → 다시 섬에 가져가 판매

 

따라서 문순득은 홍어 한 품목의 소매이익만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이 아니라,

 

섬의 수산물과 육지의 곡물,생활필수품을 서로 교환하며 왕복으로 이익을 남기는 상인이었습니다

 

우이도 어상들은 실제로 삼태도,대흑산군도 등에서 어물을 사서 나주,영암,해남,법성포,줄포 등에 공급했는데

 

문순득은 단순한 홍어 판매원가 아니라,

 

산지 수집상 + 선박 운송업자 + 수산물 도매상 + 섬 지역 생필품 공급상

 

을 겸한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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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득과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나주 인근 주민들이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다고 직접 기록했습니다

 

홍어를 회,국,구이,포 등 여러 방식으로 먹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따라서 나주권의 홍어 소비는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관광상품이 아니라,

 

적어도 19세기 초에는 이미 뚜렷한 지역적 음식 취향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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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흥미로운 것은 계절입니다

 

자산어보에는 홍어가 동지 뒤부터 잡히기 시작하고 입춘 전후에 가장 살이 오르고 맛이 좋다고 나옵니다

 

문순득 일행은 1801년 12월에 출항해 한 달 가까이 홍어를 모은 뒤 이듬해 1월 돌아오다가 표류했습니다

 

즉 그의 출항 시점은 홍어 성어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우연히 홍어 몇 마리를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겨울철 홍어 장사철을 맞아 떠난 상업 원정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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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는 근육에 요소가 많이 들어 있고, 삭는 과정에서 이것이 암모니아와 트리메틸아민 등으로 분해됩니다

 

그래서 다른 생선처럼 단순히 상해 버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삭혀 먹을 수 있습니다

 

이는 냉장시설이 없던 시대의 해상운송과 잘 맞았습니다

 

흑산도에서 나주까지는 바다와 영산강을 거치는 긴 항로였으므로,

 

잡자마자 먹어야 하는 생선보다 운반 과정에서 삭힌 상태로 상품화할 수 있는 홍어가 장거리 거래에 훨씬 적합했을 것입니다 

 

또한 18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미곡과 어염, 즉 곡물,수산물,소금의 상품화가 이뤄지면서

 

포구 사이의 상업이 일시적 교환이 아니라 상시적인 상품유통으로 발전했습니다

 

문순득의 활동은 바로 이러한 조선 후기 포구상업의 일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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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모든 사람이 홍어를 자주 먹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나주,영산강 유역과 전라도 서남부에 홍어를 특별히 좋아하는 집중된 소비시장이 있었고,

 

흑산도 어장과 그 시장 사이의 거리와 위험 때문에 전문 상인이 필요했습니다

 

문순득은 그 틈에서 홍어를 운반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쌀과 생필품을 실어 나르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당시 판매량이나 문순득의 정확한 소득을 보여주는 장부는 확인되지 않으므로 그가 얼마나 부유했는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6명이 배를 타고 한 달 가까이 어장에서 홍어를 사들이고,

 

우이도 어상들이 여러 내륙 포구에 지속적으로 공급했다는 사실을 보면,

 

일회성 부업이 아니라 하나의 확립된 직업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고 

 

생각보다 어시장이 꽤 큰 수준이 아니었을까..예측할수 있겠죠 

 

좆노잼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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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33_0030_0020_0020_0010_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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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mk.or.kr/webzine2/vol_01/sub_02.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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