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은 이란인들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페르시아의 전설적인 시인, 피르다우시 탄생 천년 기념일 이었기 때문이다. 피르다우시란 단순한 문학인을 넘어 이란인의 자랑이자 민족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고,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위인이었다.

피르다우시 탄생 천년째 기념일을 기념하는 메달

테헤란에 모인 세계 각지의 석학들과 고위 외교관, 정치인들. 이들은 피르다우시 탄생 천년 기념일에 참석하여 피르다우시를 칭송했다.
그리고 피르다우시 탄생 천년 기념제는 나치 독일에서도 열렸다. 그리고 오히려 다른나라보다 더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피르다우시 탄생 천년 기념일 2년 후 아돌프 히틀러가 이란의 레자 샤에게 보낸 편지. 레자 샤를 "황제 폐하" 라고 호칭했고 히틀러 치고는 매우 정중하게 쓴 편지였다. 사실 나치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을 '아리아인 동지'로 대우해서 취급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튼 피르다우시 기념 축제의 첫 발언자는 독일 고고학 연구소의 비간드 박사였다. 박사는, "페르시아 고대 문화는 찬란한 동시에 위대했고, 샤나메는 특히 더 걸작이다. 고대 이란 문화는 영광스러웠다" 고 발언했다.
이어서 베른하르트 러스트 제국 장관의 대리인 테오도르 발렌 박사가 연설했는데 그 내용은,
"이란인들과 독일인은 친구다. 우리는 이란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국가 사회주의는 오해와 달리 외국 문화에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갖는 사상이 아니다. 우리는 독일 문화에 대해 존중하는 것 만큼이나 외국의 문화도 존중한다. 이란과 독일의 우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되어 기쁘다" 고 했다.
박사는 이어서 말하기를 "독일인과 페르시아인은 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둘 다 인도-게르만계 혈통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이란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레자 샤 황제 폐하를 존경한다." 고 했다.
정식 행사는 아니었지만 독일의 섀더 교수도 "페르시아의 샤나메와 독일의 역사는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하는등 나치 독일로써는 꽤 공들인 외교전이었고, 실제로 레자 샤는 반영 감정으로 인해 독일의 도움을 받으려다가 소련과 영국에게 나라가 절단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