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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발명품, 고구려 등자 이야기.

SUMMARY
시작점 | 개드립 단독 화제 · 원문 조회 162 · 댓글 18
키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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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 

 

말 안장에 달아 발을 고정 시키는 도구입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인류가 말을 활용하는 기마술은    

등자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획기적인 발명품 중에 하나죠. 

 

만약 등자가 없다면 말 위에 탄 사람은 

말 위에서 신체를 완전히 고정할 수 없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쉽게 낙마하게 됩니다.  

 

때문에 등자 이전의 승마 기술은 

장기간에 걸쳐 수련해야 하는 어려운 기술이었고 

태어나서 말과 함께 자라는 유목민이 아닌 이상 

평생을 걸쳐서 갈고 닦아 익히는 기술이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농경 국가는 "전차"를 활용했고

기병대는 소수의 귀족이 운용하는 부대거나 

전차와 보병을 보조하는 정찰용에 한정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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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의 존재 유무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등자가 없다면 무릎 말을 누르며 고정해야 하지만

등자를 활용하여 보다 쉽게 낙마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고 강한 충격도 버티게 됩니다) 

 

 

등자의 등장으로 승마가 보다 쉬워짐에 따라 

적은 훈련으로 대규모 기병의 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중기병을 이용한 "충격 전술" 사용을 

보다 쉽고 보편적으로 사용 가능하게 하였죠

 

논란은 있지만 유럽에서 중장갑 기사 계급이 탄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등자의 전파에서 찾기도 합니다.

(*비잔틴의 카탁프락토이 중기병처럼 

등자가 없음에도 이미 충격기병을 운용하기 시작했죠 

다만 그걸 위해선 굉장히 빡시고 어렵게 훈련해야 했습니다)

 

인류가 최초로 등자를 발명한 지역이 어딘가? 는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추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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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경 유물에서 등자가 처음 보입니다. 

인도 북부에서 출토된 기마 도형에 표현 된 것으로

기마 인물이 발을 발걸이에 거는 유사한 형태가 보이죠

 

등자의 인도 기원설이 주장되는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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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2세기 

인도 북부와 그리 멀지 않은 지역, 중국 운남성 지역에서 

인도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한 형태의 발걸이가 나옵니다. 

 

위 2가지 사례 인도와 운남성의 등자 유물은 

등자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발가락 걸이" 입니다. 

 

인도 북부와 운남성 지역의 산악 환경에서 

언덕이나 산악을 오르고 내릴 때 

무게 중심을 지탱하기 위해 발가락을 걸었던 용도죠.  

 

그 밖에 스키타이와 흉노지역 등 유목지역에서 

이미 등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모두 1930~50년대 논문에서 실물 없이 주장된 것으로  

"기마술이 이토록 뛰났으니 등자를 사용했을 것이다"

라는 추정에 따른 단순 의견을 담은 주장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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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발견 된 오나라 정봉의 무덤에서 나온 도기 인형의 외발등자)

 

 

발가락 걸이가 아닌 등자와 같은 발걸이 형태는   

중국의 한나라 시기, 서진, 동진 시기 유물에서 발견됩니다. 

 

외발 등자입니다 

 

말에 오르고 내릴 때 딛기 위해 사용하는 

말 안장 한쪽에만 달려있는 발 디딤용 도구입니다.

우리가 아는 그런 개념의 등자가 아니죠 

 

최근 오나라 정봉 무덤에서 비슷한 외발등자가 나오자 

기레기 낚시인지 인류 최초의 등자가 50년 앞당겨졌다!

그런류의 국뽕 기사를 중국 언론이 퍼트린 바 있습니다 

 

그냥 똑같은 외발 등자입니다. 

 

우리가 논하는 역사적인 등자는 

말에 단단히 고정 하는게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

"철제 등자"를 말합니다. 

 

요서 지방 선비족 유물에서 처음 실물이 발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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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경 모용 선비족 유물인 "철제 등자"입니다. 

북연의 선비족 무덤인 풍소불묘 출토 등자로

현재 중국에서 인류 등자의 기원이라고 밀고 있는 유물이죠 

(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에 나온 선비족 등자가 있음에도

중국이 풍소불묘 등자를 유독 미는 이유는 북연이 선비족 땅에 세워진

한족 왕조라서 그런게 아닌가...개인적으로 추정해 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같은 시기 만주와 한반도에서도 철제 등자가 똑같이 발견됩니다. 

모두 4~5세기경의 유물로 선비족의 출현 시기와 묘하게 겹치면서

심지어 종류도 더 다양하고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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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제 등자는 발걸이 윗 연결 부위 길이에 따라 초기 단병등자에서 후기 장병 등자로 점차 발전해 가는데

이중 단병 등자는 현재까지는 오직 한국에서만 출토되었습니다)  

 

한국 연구자 중에는 고구려, 신라에서 발견되는 등자가 

초기 형태의 등자와 발전된 후기 등자가 모두 발견되니 

한국의 등자가 선비족 계통에서 발견되는 등자 보다 먼저다 

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가장 빠른 실물 등자는 선비족 전연의 지배영역인 

중국 안양과 조양에서 4세기 초반에 발견이 됩니다.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 된 등자 보다 시기적으로 더욱 빠르죠 

선비족 최초 제작설이 좀 더 유력해 보입니다.  

 

정리하면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철제 등자" 는 

동아시아 동북 지방인 선비, 고구려 지역에서 

기원후 4~5세기경 최초로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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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과 고구려가 치열하게 전쟁하던 시기입니다. 

 

모용 선비족은 고구려와 요동 전선을 두고 맹렬하게 전쟁 했으며

심지어 고구려의 수도를 함락하고 불태워 엄청난 피해도 주었죠  

 

강력한 유목 기병대를 이끄는 모용 선비족을 상대하며 

매번 큰 피해를 보았던 고구려가

당시 군대를 중기병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유목민 보다 미숙한 승마술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철제 등자"를 적극 수용하여 도입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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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철갑중기병 개마무사 벽화)

 

 

이때 만들어진 등자가 "고구려 등자" 입니다. 

 

이 시기 고구려는 철제 등자를 본격 도입했고

등자를 활용한 강력한 충격 중기병을 윤용하며  

철기병의 강력한 위력을 알리게 됩니다. 

 

나아가 이 고구려 양식의 철제 등자를 한반도 남부 지역과

북방 유목지역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퍼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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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 선비족은 탈발 선비족에게 멸망 당했고 

탁발 선비족은 북중국 지역을 석권하는 강대국이 됩니다. 

 

고구려는 강력한 북위를 견제하기 위하여 

당시 몽골 초원에 있는 몽골-선비족 계열 유목민 

유연(柔然) 과 연맹하여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이 시기 고구려와 유연이 교류를 하면서 

만주의 풍부한 철을 통한 다양한 철기 제품을 전했고 

"고구려 등자"가 유연에게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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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 지역에서 출토 된 유물로 명백하게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고구려 등자와 동일한 "극동형 등자"가 발견됩니다. 

 

당시 유연은 유목 국가로 철기 제작이 어려웠기 때문에 

속국인 돌궐족, 즉 투르크 인들에게 철기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일종의 위탁생산을 맡긴 것으로 덕분에 돌궐족은 크게 성장했죠 

이후 돌궐이 배신을 때리며 거꾸로 유연을 공격했으니

결국 유연은 몽골 초원 본거지에서 쫒나게 됩니다. 

 

유연은 더이상 동아시아 지역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판단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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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유럽 헝가리 지역에 정착하게 됩니다. 

 

!!! 

 

장장 5,000KM를 이동하여 

몽골 초원에서 유럽 헝가리까지 피난을 간 것이죠 

 

최근 양 지역에서 발견된 유골 300여구에 대한  

유전자 정밀 분석을 진행한 결과

혈연적으로 완전 동일함이 밝혀졌습니다 

도중에 어디 다른 지역에서 정착 생활을 했다면 발견 되었을 

혼혈이나 다른 문화 영향의 흔적조차 없단 것으로 

매우 단기간에 벌어진 민족 대이동이었단 뜻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바르" 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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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유럽과 발칸을 휩쓸면서 비잔틴 제국을 위협한 아바르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에서 뚜까 맞고 쫒겨난 민족이지만 

그 지역이 살기 빡신 것 뿐이죠 

유럽은 기존에 상대하던 북위, 돌궐, 고구려와 비교하면

너무 쉬운 애송이 국가들 뿐입니다. 

그동안의 한을 풀듯 마구 뚜까패며 다녔습니다. 

 

유럽에 보여준 아바르의 능숙한 궁기병 전술과 함께 

특히 "충격 중기병 전술"은 단 시간에 동유럽 전역을 무너뜨리며

유럽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이고 공포스런 인상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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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발명품 

등자가 아바르족을 통해 유럽에 알려졌으니.... 

 

"고구려 등자"가 이때 유럽으로 전파가 되었습니다 

 

고구려의 "철제등자"는 일종의 표준이 되어서 

동아시아 한반도의 백제, 신라, 가야에도 전파 되었고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에게도 전파 되었으며 

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유럽에도 전파가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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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재현 한 고구려 개마 무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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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재현 한 아바르족 무사의 모습...

왠지 고구려 개마무사의 냄새가 느껴지죠 그 느낌이 맞습니다. )

 

아바르가 유럽에 등자를 전수해 줌에 따라 

유럽의 기병은 중장갑 충격 기병 중심으로 전환 되었으며 

오랜기간 강도 높은 훈련이나 유목 생활을 안해도 

좋은 장비와 무기을 유지할 능력만 있으면 가능한 병종이 됩니다 

 

이후 샤를마뉴 대제가 이런 중장갑 기병을 이끌고

유럽으로 침공한 이슬람 세력을 격파시키자 

본격적으로 전쟁의 중심이 된 기사 계급이 탄생하였으니 

유럽의 중세 봉건제 사회가 만들어 집니다. 

 

어떤분 이에 대한 한 줄 요약을 매우 잘해 주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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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역사가 유연을 통해 유라시아 문명사를 바꾸는 거대한 날개짓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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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때 아바르족의 활약 덕분에

당시 동로마의 역사서에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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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Avars(아바르)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Taugast(북위)의 공격을 받고 다시 한번 비참하게 몰락하여 Taugast와 동쪽으로 이웃해있는 Mouxri(고구려)로 가 도움을 요청했다.

 Mouxri(고구려)라 불리는 나라의 국민들은, 위험에 대처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일상처럼 행해지는 혹독한 군사훈련으로 그 투지가 매우 높았다.

-비잔틴의 역사가 테오필락트 시모카타의 저서 《Historiam》 613년 가록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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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오는 모쿠리가 즉 맥쿠리로

유목민들이 고구려를 지칭하던 이름 맥구려(貊句麗)입니다.

 

유럽에서 기록한 최초의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