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최종적으로 승리하자

한국과 일본하고 기타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러일전쟁은 상당히 큰 여파를 남겼다.


당시에는 동양인이 서양인에게 승리한 전쟁이라고 유럽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놓였던 아시아인들에게 아시아인이 승리했다는 큰 충격을 주고

조선에 이완용이나 이지용 같은
친러인물들도 이때 대거 친일로 돌아서고


청나라에서도 일본에 대해 재평가하는 시각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증폭하는 결과를 낳아
일본을 ‘작은 왜(倭)가 오만하게 천자국을 모욕했다고 청일전쟁이후 반일감정높았던 청나라도 1905년~1911년 사이, 일본으로 유학 간 중국인 수가 1만 명을 넘고 일본을 ‘학습 대상’으로 강하게 찬양하기 시작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에 따르면
그는 소년시절에 일본의 승전 소식을 듣고
수많은 아시아의 소년소녀와 어른들이 감격했다고 얘기했고

터키의 국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파샤부터도
일본의 승리를 '차리즘 독재에 대한 헌정주의의 승리'라면서 튀르크계 민족에게 동네방네 홍보

훗날 동남아에서는 나중에 일본이 침공했을때
초반에 많은 사람들이 해방군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형성에 많은 영향을줄정도로
당시 아시아에서 러일전쟁 승리는 장안에 화제였다고함

이 사람도 친일파가 된 계기가 러일전쟁이었으니까